디지로그

08 책꽂이 2008. 10. 14. 22:10

아날로그만 있던 시절도 있었다. 시계는 태엽을 감아야지 돌아가고, 사진도 필름을 넣어야지만 찍을 수 있었다. 시간은 흘러, 디지털의 시대가 왔다. 필름이 없이도, 메모리 카드만 넣으면 사진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의 향수는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디지털 카메라의 셧터를 누를 때마다 마치 아날로그의 그것처럼 '찰칵'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디지로그다. 디지털에 녹아있는 아날로그.

디지로그란? (디지털 + 아날로그)

디지로그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쳐 만든 새로운 말이다. 0,1 로 대변되는 디지털시대에 연속적으로 흐르고 감정이 배어있는 아날로그를 합쳐 만든 말로써, 책 전반에 걸쳐 이 IT 전반에 대한 문명 현상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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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 이어령 / 생각의 나무

굉장히 쉬운 개념같으면서도 뭐라고 한가지로 꼭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책 전반에 은은하게 녹아들어서 인지, 주제를 극명하게 집어내기가 난해하다.

초고속 인터넷 광케이블이 깔려 있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벽 하나 사이를 둔 이웃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른다. 얼마나 아니러니컬한 일인가. 천리 밖 소식을 TV와 인터넷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우편물이 쌓인 것을 보고서야 독거노인의 사망을 아는 것이 현대인의 아파트 문화이다. (47쪽)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30여 개의 인터넷 사용국 중에서 @과 제일 가까운 이름은 우리나라의 골뱅인 것 같다. 골뱅이의 윗 단면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모양이나 크기까지 어느 나라 사람이든 무릎을 칠 것 같다. (92쪽)

...인류가 시간에 쫓기고 중노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농업혁명을 이룬 신석기시대 이후의 일이다. 무기 중노동의 형을 복역하고 있는 것은 야만스러운 구석기시대의 채집민들이 아니라 바로 생산과 소비의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101쪽)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같은 일이 있어났다. 경인지구의 소매치기들이 남몰래 모여 대회를 연 것이다. 경찰이 추적해보니 올림픽 기간중에 외국 방문객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자들이 있으면 영원히 소매치기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리겠다는 다짐 대회였던 것이다. (111쪽)

왜 아침은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아직 그 빛 속에 어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저녁 노을은 왜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것이 한국인이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던 그 공간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기분 좋은 시간. 한국인의 시간이다. (159쪽)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책에서 예로 든 것들이 모두 다 맞는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에이~이건 좀 억지스럽다' 하면서도 하나씩 전개되는 내용들을 보면, 점차 수긍해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특히 외래어를 들여올 때 그대로 들여오지 않고, 꼭 말을 더한다는 부분은 정말 재밌었던 것 같다.

가령, 캔(Can)을 부를 때, 일본처럼,  그내들의 발음으로 읽어 '깡' 이라고 읽지 않고, 통을 붙혀 깡통으로 한다거나, 핸드폰처럼 영어로 되있는 말이나, 휴대전화 처럼 한자가 아니라, 휴대폰처럼 합성어를 만든다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탁월한 관찰력과 통찰력이 발휘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요약

책 전반에 걸쳐 '먹는다' 라는 큰 맥으로 디지로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책이다. 언어적으로보나 논리적인 흐름으로 보나 굉장히 유익한 책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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